퇴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지만,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멈춤과 흔들림을 겪게 됩니다. 정체기와 슬럼프는 ‘퇴사자의 숙명’처럼 찾아오며, 때로는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고민과 자존감의 균열을 유발합니다. 이 글은 그 불안의 시간 속에서 내가 마주한 감정과 내린 선택에 대한 기록입니다.
처음의 설렘은 사라지고, 멈춰 선 감정만 남았을 때
퇴사 후 처음 몇 달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하고 싶던 일을 해보고,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가며 느끼는 자유로움은 직장 생활 동안 느낄 수 없었던 짜릿함이었습니다. “드디어 내가 주도하는 삶을 시작했구나”라는 감정이 매일을 채웠고, 그동안 억눌려 있던 것들이 하나둘 회복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설렘은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식고, ‘이걸 계속해서 해도 되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쉼’의 시간이라 여겼던 나날들이 점차 ‘멈춰 있는’ 상태처럼 느껴졌고, 어느 순간부터 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성취도 보이지 않고, 매일 같은 루틴이 반복되며 정체된 삶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커리어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 자신이 뒤처지고 있다는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예전엔 꿈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목표는 있지만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그리고 그 안에서 생긴 무력감이 정체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 흔들리는 나와의 대화
정체기가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회사'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처음 퇴사할 때만 해도 두 번 다시 직장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수입은 늘 불안정하고, 앞으로의 방향도 명확하지 않으며,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삶은 외롭고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나을까?”, “월급이 들어오는 삶이 조금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나는 분명 나답게 살겠다고 퇴사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건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히 ‘자유 vs 안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존감의 균열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자각, 시간을 많이 가졌지만 별다른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다는 실망, 이 모든 것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를 ‘능력 없는 사람’처럼 여기게 되었고, 자존감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퇴사 후의 삶은 결코 낭만적인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끊임없는 싸움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회복은 방향보다 ‘의미’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고민 끝에 저는 단순히 회사로 돌아갈지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소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왜 퇴사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회사에 대한 생각은 그저 현실 도피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다시 필요로 하는 구조인지. 이런 질문들을 솔직하게 마주하면서, 어느 정도 감정의 정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큰 전환점은 삶의 방향보다 ‘하루의 의미’를 먼저 찾는 것이었습니다. 큰 비전을 그리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일.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루틴을 재정비하며 하루를 조금씩 회복했습니다. 여전히 결과는 크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 ‘의미의 단위’가 달라지자 삶도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정체기는 실패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멈춤이라는 사실을요. 슬럼프는 내가 방향을 잃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는 신호라는 것도요. 그래서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 하는 질문도 더 이상 회피하거나 억누르지 않았습니다. 필요하다면 그것도 내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내 삶에 대한 결정권을 다시 내 손에 쥐었습니다.
정체기와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퇴사 이후 삶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나는 흔들렸고, 낙심했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은 나를 다시 중심으로 이끌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천천히 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느릴지라도, 내가 선택한 방향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