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이전처럼 눈에 띄는 성과나 수치가 없어진 삶을 살다 보면 문득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이 고개를 듭니다.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제자리걸음 같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감정. 이 글은 그 불안의 정체를 들여다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성장의 증거를 스스로 찾아간 과정입니다.
성장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성장이라는 걸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과 평가, 연봉 인상, 직급 상승, 프로젝트 성공 여부 등 ‘숫자와 타이틀’로 측정되는 결과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지금의 삶은, 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을 써도 반응이 없고, 공부를 해도 아직 실현된 건 없고,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면서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일 때면, 자연스레“이게 맞는 걸까?”, “나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특히 주변에서는 누군가는 승진하고,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고, 누군가는 창업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초조함이 밀려옵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막막함과 자책입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나는 그대로인 것 같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도 좁은 기준으로 ‘성장’을 정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결과가 눈에 보여야만, 성과가 숫자로 증명되어야만, 성장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걸까요?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더 깊어진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누가 점수를 매겨주는 구조 안에 있지 않고, 외부 피드백이 적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내가 나를 인식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었던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가 전보다 나아진 점이 무엇인가?’를 자주 떠올리려 합니다.
예를 들어, 전에는 하루 종일 불안에 휘둘렸다면, 지금은 불안을 인식하고 멈출 줄 아는 내가 되었다는 점. 예전엔 계획만 세우고 행동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작더라도 실천하고 있다는 점. 과거엔 타인의 말에 흔들렸다면, 지금은 내 선택에 대해 조금 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점. 이런 변화들은 성과도 아니고,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성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무의 키만 보려 하지만, 성장은 보통 뿌리부터 먼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나의 바닥은 더 깊어지고 있고, 나를 지탱하는 힘은 서서히 쌓이고 있습니다.
성장의 기준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야 할 때
내가 지금 성장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남이 아니라 내 감각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비교는 불안의 시작이지만, 성장은 온전히 내 안에서만 감지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오늘 하루, 어제와 달랐던 나의 태도는 무엇이었는가? 이전에는 어렵게 느껴졌던 일이 이제는 조금 더 편해졌는가?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지점이 있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단 한 가지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분명히 어제보다 나아진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를 채우는 루틴일 수도 있고, 감정 조절력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향한 말투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성장은 그렇게 아주 조용하고 미세한 결로 우리 삶에 스며듭니다. 그러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성장은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해.”“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나는 분명히 쌓이고 있어.”“나만 몰랐던 나의 성장을 이제는 알아봐주기로 하자.”
"나는 성장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들 때, 반드시 거창한 답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저 나를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는지, 나에게 더 다정해졌는지, 어제보다 덜 불안했는지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어제보다 자란 나의 모습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자라고 있는 나의 시간, 그 안에 있는 당신도 분명히 잘하고 있습니다.